퇴직연금 DB·DC·IRP 고르는 방법: 월급쟁이가 먼저 볼 5가지

얼마 전 지인이 퇴직연금 계좌 화면을 보여주면서 ‘이 돈은 그냥 회사가 넣어주는 돈 아닌가?’라고 묻더군요. 사실 많은 직장인이 비슷합니다. 월급은 매달 확인하지만 퇴직연금은 퇴사할 때쯤 한 번 보는 돈처럼 취급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계좌는 세금, 수수료, 투자 성과가 한꺼번에 얽혀 있어서 몇 년만 방치해도 차이가 꽤 벌어집니다.
내 퇴직연금 유형부터 확인하는 방법
퇴직연금은 크게 DB형, DC형, IRP로 나뉩니다. 고용노동부 안내 기준으로 DB형은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고 근로자는 미리 정해진 방식의 퇴직급여를 받는 구조입니다. 일반적으로 퇴직 직전 평균임금과 근속연수가 중요합니다. 임금이 꾸준히 오르는 직장, 승진 가능성이 높은 직장이라면 DB형이 안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DC형은 회사가 매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넣고, 근로자가 직접 운용합니다. 수익이 나면 퇴직급여가 늘고, 손실이 나면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봉이 4,800만원이면 회사 부담금은 대략 연 400만원 수준입니다. 이 돈이 20년간 매년 들어오는데 연 2%로 굴러가느냐, 연 5%로 굴러가느냐에 따라 은퇴 시점의 숫자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IRP는 개인형퇴직연금입니다. 퇴직금을 받거나, 이직하면서 쌓인 퇴직급여를 한 계좌에 모으거나, 세액공제를 목적으로 추가 납입할 때 많이 씁니다. 2022년 4월 14일부터는 퇴직금을 원칙적으로 IRP 계좌로 이전해 지급하는 방식이 적용되고, 55세 이후 퇴직하거나 퇴직급여가 300만원 이하인 경우 등은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DB형과 DC형은 임금상승률로 판단하기
DB형과 DC형을 고를 수 있는 회사라면 가장 먼저 볼 숫자는 임금상승률입니다. DB형은 퇴직 전 임금이 중요하므로 연봉이 꾸준히 오르는 사람에게 유리한 편입니다. 반대로 임금상승률이 낮거나, 이미 연봉 상승 구간을 지난 상태라면 DC형에서 운용 성과를 높이는 전략이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년 뒤 퇴직을 앞둔 A씨가 있고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이 5,000만원이라고 가정합니다. DB형은 회사가 책임지는 구조라 개인이 상품을 고르는 부담이 작습니다. DC형은 본인이 운용하므로 연 1% 차이만 나도 10년 뒤에는 체감 금액이 달라집니다. 다만 수익률을 높이겠다고 무조건 주식형 상품으로 채우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DC형과 IRP는 위험자산 투자 한도가 일반적으로 70%까지 적용되고, 개별 주식 직접투자는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임금이 빠르게 오르는 구간이면 DB형의 안정성을 먼저 본다.
- 임금 상승이 제한적이고 운용에 관심이 있다면 DC형의 선택지를 검토한다.
- 투자 경험이 적다면 TDF, 채권혼합형, 예금성 상품을 함께 비교한다.
- 은퇴가 5년 이내라면 변동성보다 현금화 시점과 손실 가능성을 더 크게 본다.
IRP 세액공제는 금액보다 순서를 봐야 한다
IRP가 인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세액공제입니다. 국세청 연말정산 안내 기준으로 연금저축은 연 600만원까지,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계좌를 합산하면 연 900만원까지 세액공제 대상이 됩니다. 공제율은 총급여 5,500만원 이하, 종합소득금액 4,500만원 이하 구간에서 15%이고 그 초과 구간은 12%입니다. 지방소득세까지 감안하면 실무적으로는 각각 16.5%, 13.2%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합니다.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가 연금저축과 IRP를 합쳐 900만원을 납입하면 최대 148만5,000원 수준의 세 부담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총급여가 그보다 높다면 최대 118만8,000원 수준입니다. 다만 이미 낼 세금이 적은 사람은 계산된 금액을 전부 돌려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세액공제는 세금을 직접 줄여주는 제도이지, 무조건 현금 보너스를 주는 구조는 아닙니다.
순서는 보통 연금저축 600만원, IRP 300만원 조합이 많이 쓰입니다. 연금저축은 일부 인출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낫고, IRP는 중도 인출 제한이 더 강한 편이라 생활비 여유가 넉넉하지 않은 사람은 IRP부터 900만원을 꽉 채우는 방식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절세율만 보고 넣었다가 급전이 필요해 해지하면 공제받은 금액과 운용수익에 기타소득세가 붙을 수 있어 아깝습니다.
수익률보다 먼저 수수료와 상품 구성을 보는 법
퇴직연금 화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익률입니다. 그런데 금융 애널리스트 입장에서 더 먼저 보는 건 수수료와 상품 구성입니다. 연 0.3% 수수료는 작아 보이지만 적립금 1억원이면 1년에 30만원입니다. 10년, 20년 동안 쌓이면 커피값 수준이 아니라 실제 은퇴자금의 차이가 됩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서는 퇴직연금 사업자별 수익률과 수수료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최근 공시는 제도 유형, 상품 유형, 기간별 수익률을 나눠 보여주는 방향으로 개선됐습니다. 같은 5% 수익률이라도 원리금보장상품 중심인지, 실적배당형 상품 중심인지에 따라 의미가 다릅니다. 예금성 상품의 안정성과 펀드형 상품의 변동성을 같은 잣대로만 보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 1년 수익률만 보지 말고 3년, 5년 흐름을 함께 본다.
- 운용관리수수료와 자산관리수수료를 따로 확인한다.
- 원리금보장, 채권형, 주식형, TDF 비중을 적어 본다.
- 내 은퇴 시점과 상품 만기, 환매 가능 시점을 맞춘다.
퇴직연금을 굴릴 때 피해야 할 행동
첫째, 원리금보장상품에 전부 넣고도 ‘안전하게 잘하고 있다’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가상승률이 연 3%인데 계좌 수익률이 2%라면 실제 구매력은 줄어듭니다. 물론 은퇴가 가까운 사람에게 안정성은 중요합니다. 다만 30대와 40대가 수십 년 동안 예금형으로만 가져가는 것은 장기 자산 형성 측면에서 아쉬울 수 있습니다.
둘째, 세액공제 한도만 보고 무리하게 납입하는 것입니다. 퇴직연금은 노후자금이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비상금, 주택자금, 단기 대출 상환 계획이 불안정하다면 납입액을 낮추는 편이 낫습니다. 셋째, 디폴트옵션을 아무 생각 없이 방치하는 것입니다. 사전지정운용제도는 운용 지시가 없을 때 정해진 상품으로 돈이 들어가게 하는 장치입니다. 이름은 자동이지만 내 성향에 맞는지는 별도로 봐야 합니다.
퇴직연금은 ‘퇴사할 때 받는 돈’이라기보다 ‘월급의 일부가 미래로 이동한 계좌’에 가깝습니다. 회사가 넣어주는 돈, 내가 추가로 넣는 돈, 세금에서 줄어드는 돈, 매년 빠지는 수수료가 모두 한 통장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한 번에 대단한 선택을 하려 하기보다 내 유형 확인, 세액공제 한도 계산, 수수료 비교, 상품 비중 조절을 1년에 한 번만 반복해도 충분히 달라집니다. 노후 준비는 거창한 투자 실력보다 이런 작은 점검을 오래 이어가는 쪽이 더 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