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고르는 방법, DB·DC·IRP를 내 상황에 맞추려면 이렇게

얼마 전 지인과 퇴직연금 계좌를 같이 보다가 꽤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매달 월급명세서는 꼼꼼히 보는데, 정작 수천만 원이 쌓인 퇴직연금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군요. 사실 퇴직연금은 어려운 상품이라기보다, 제도 이름이 낯설고 세금 규칙이 얽혀 있어서 멀게 느껴지는 쪽에 가깝습니다.
퇴직연금은 세 갈래부터 구분하면 쉽습니다
퇴직연금은 크게 DB형, DC형, IRP로 나뉩니다. 고용노동부 설명 기준으로 퇴직연금은 회사가 근로자의 퇴직급여 재원을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55세 이후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돈을 누가 운용하고, 손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다릅니다.
- DB형은 퇴직 때 받을 금액이 임금과 근속연수 기준으로 정해지는 방식입니다. 운용 책임은 회사가 집니다.
- DC형은 회사가 매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넣고, 근로자가 직접 운용합니다. 수익과 손실이 내 퇴직급여에 반영됩니다.
- IRP는 이직·퇴직할 때 받은 퇴직급여를 모으거나, 개인이 추가 납입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개인형 계좌입니다.
DB와 DC는 임금 흐름으로 판단합니다
임금 상승이 크다면 DB형이 편할 수 있습니다
DB형은 보통 퇴직 직전 평균임금과 근속연수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그래서 승진 가능성이 높고, 앞으로 임금이 꾸준히 오를 직장이라면 DB형이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운용 성과가 나빠도 근로자가 받을 퇴직급여 산식 자체는 회사가 책임져야 하니까요.
임금 상승이 제한적이면 DC형도 비교할 만합니다
반대로 임금피크제, 성과급 변동, 이직 가능성처럼 향후 평균임금이 크게 늘지 않을 상황이라면 DC형을 따져볼 만합니다. 예를 들어 연간 임금총액이 5,000만 원이라면 회사 부담금은 최소 약 417만 원입니다. 이 돈을 10년, 20년 동안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수익률 욕심만으로 DC를 고르는 게 아니라, 하락장을 버틸 수 있는지까지 같이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IRP는 세액공제보다 출구 계획이 더 중요합니다
IRP는 연말 세액공제 때문에 관심을 많이 받습니다. 2026년 기준으로 연금저축과 IRP를 합쳐 세액공제 대상 납입 한도는 연 900만 원입니다. 연금저축만으로는 600만 원까지이고, IRP를 함께 쓰면 합산 900만 원까지 채울 수 있습니다. 총급여 5,500만 원 이하라면 공제율 16.5%로 최대 148만 5,000원, 그보다 높다면 13.2%로 최대 118만 8,000원 수준입니다.
다만 세액공제는 공짜 보너스가 아닙니다. 중도해지하면 세액공제 받은 금액과 운용수익에 기타소득세가 붙을 수 있습니다. 55세 이후 연금으로 나눠 받을 때 세금 부담이 낮아지는 구조라서, IRP는 1~2년 뒤 쓸 돈을 넣는 통장이라기보다 은퇴자금 전용 계좌로 보는 편이 맞습니다.
운용은 안전자산 30%를 먼저 생각합니다
DC형과 IRP 가입자는 상품을 직접 골라야 합니다. 퇴직연금에서는 위험자산 투자 비중에 제한이 있어 일반적으로 70% 한도가 적용됩니다. 그래서 주식형 펀드나 ETF를 담더라도 나머지 부분에는 예금, 채권형 상품, 채권혼합형 상품, 요건을 갖춘 TDF 같은 자산을 배치하게 됩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의 2025년말 운용현황을 보면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4조 원으로 커졌고, 전체 수익률은 6.5%를 기록했습니다. 유형별로는 DB형 3.5%, DC형 8.5%, IRP 9.4%로 차이가 컸습니다. 물론 한 해 수익률만 보고 제도를 고르면 위험합니다. 다만 퇴직연금도 더 이상 예금으로만 두는 계좌가 아니라는 흐름은 분명해졌습니다.
- 원금 변동이 부담스럽다면 예금과 채권형 상품 비중을 높입니다.
- 은퇴까지 10년 이상 남았다면 글로벌 주식형 ETF나 TDF를 일부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수수료가 높은 상품은 장기 수익률을 갉아먹으니 같은 유형 안에서 비용도 비교합니다.
- 1년에 한 번은 수익률, 상품 비중, 퇴직 시점까지 남은 기간을 같이 점검합니다.
내 계좌에서 바로 확인할 세 가지
첫째, 회사 제도가 DB인지 DC인지 봅니다
회사 인사팀이나 퇴직연금 사업자 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DB형이라면 회사의 적립 상태와 제도 변경 가능성을, DC형이라면 내가 고른 상품과 수익률을 봐야 합니다.
둘째, IRP 납입액은 현금흐름 안에서 정합니다
세액공제 한도를 꽉 채우는 것이 늘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전세금, 대출 상환, 자녀 교육비처럼 가까운 시점의 지출이 있다면 무리한 납입은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셋째, 퇴직금 수령 방식을 미리 생각합니다
퇴직급여는 보통 IRP로 이전됩니다. 55세 이후 퇴직, 300만 원 이하 급여 등 예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IRP에서 연금 또는 일시금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퇴직소득세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 은퇴 생활비 계획과 함께 보는 게 좋습니다.
퇴직연금은 이름만 보면 먼 미래의 제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지금 내 월급과 투자 습관이 쌓이는 계좌입니다. 저는 퇴직연금을 고를 때 수익률보다 먼저 임금 흐름, 은퇴까지 남은 시간, 중도해지 가능성을 봅니다. 이 세 가지가 맞으면 상품 선택은 훨씬 차분해집니다.
